"누가 이런 노래를 좋아하겠냐고요? 그것까지 신경써야 해요?" 로빈 굿펠로우의 전언




코카인 오줌물이 내 시야에 걸린 건 재작년 뷔: 라름에서였죠.
그 때 내 감상은 '솔직히 뷔 라름보다는 피치포크스럽다'였어요.
정확히 그 때 평을 인용하자면 "흠. 뭐, 더 찾아봐야할 것 같긴 하다만..."이네요.
일단 마킹을 해두긴 했지만, 이미 앨범을 두 장이나 내놨었던 이 밴드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죠.

노래를 어떻게 엮어가야할지 준비는 되어 있지 않지만
어떻게든 튀는 것을 만들어 보려고 발악하는 트래시 펑크 밴드.
트랙당 1분 내외의 극단적으로 짧은 플레이타임과
읖조리는지 비명을 지르는지 구분 안 가는 어설픈 창법.
그러면서도 뭔가 전향적인 소음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전자기 피드백 정도나 찌끄려놓는 하찮은 실험성.
리사 르블랑 같은 트래시 포크나,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트래시 챔버쯤 되면 몰라도,
내가 이런 밴드를 주목해야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았죠.

2017년 앨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솔직히 8트랙, 플레이타임 13분 앨범을 뭐로 취급해야하는지도 의아했고,
마킹은 해놨지만 앨범 구매조차 하지 않고 '얘네도 포기해야하나...'하고 있었죠.

작년 EP는 흥미로웠어요.
리믹스 3개 트랙은 아무 의미 없었지만,
My Cake과 Pretty Pissed은 뭔가 묘한 클릭이 있었죠.
하지만 역시 이걸 사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고작 2분 10초가 마음에 들었다고 5트랙 EP를 살 수는 없잖아요.



자, 그래요. 그리고 이 앨범이 떨어졌죠.
작년에 미뤄둔 My Cake과 Pretty Pissed이 수록된 앨범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사야겠구나 싶어서 이걸 사놓고도...
난 주말이 다 지나도록 이 앨범을 듣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그냥 귀찮았어요.
그리고 2주 밀린 앨범 정리를 끝내려고 훑어보니
안들어본 앨범이 이것과 깔끔쟁이 어린애 소포모어뿐이라서...
좀 고민을 했습니다.
깔끔쟁이 어린애는 아마 의미 있는 앨범을 만들어왔을 거예요.
그런데 플레이타임이 3113초입니다.
코카인 오줌물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이 이미 뒤졌던 골짝 또 후벼파고 있겠죠.
그런데 플레이타임이 1212초입니다.
둘 중 하나는 들어야 '이건 아직 안들어봤어요.' 하는 것도 명분이 서죠.
둘 중 하나는 들어야 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오래 고민을 했습니다.
저 1800초, 30분은 정말 의미 있는 차이란 말이죠.
어쩐지 그 고민을 30분 넘게 한 것도 같지만, 뭐.... 세상일이 다 그런 거잖아요?

결국 난 짧은 쪽을 택했고, 첫 트랙 소시오파틱 프렌드에서
처음부터 훅 치고 들어오는 기타 클리셰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죠.


지금까지 코카인 오줌물의 가장 큰 단점은,
노래를 노래답게 만드는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클리셰란, 오래 사용되어 진부한 공식이란. 혹은 그 진부함이란,
바로 그 노래를 노래답게 만드는 것 그 자체죠.

이 밴드가 지금껏 여러 기악 클리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네, 그건 그냥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죠.
이미 세상에는 모든 클리셰가 완전 배제된 기악 진행 따위는...
무조 음악이 아닌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고요.
하지만 이 밴드는 그걸 있는 그대로, 진부하게, 사용되어야 마땅한 자리에,
늘 사용되던 식으로 쓰질 않았죠.
그리고 그 변용은 결코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밴드는 그 실패로 점철된 길을 걸으면서도 결코 방향을 돌리지 않았고,
난 그 강박을 싫어했어요.

그래요, 난 고집 있는 어린애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런 건 고집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강박이죠.
자신이 추구하는 길을 잡고 고집있게 그 길을 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바위가 길을 막고 있으면 돌아가는 게 빨라요.
확실히, 그 유연함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나는 논란의 여지가 있죠.
정말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바위를 두들겨 부수고 가는 게 더 빠른 때도 있으니까요.
심지어 고작 돌부리를 피해 다니다 길을 잃는 아이들도 있는 게 현실이고요.
하지만 그래도, 이건 확실해요. 집채만한 바위를 뚫고서라도 직진하겠다는 건
자기 방향을 잡는 게 아니라 그 방향에 단순히 집착하는 거죠.
이미 그 방향으로 얼마나 갈 수 있느냐에 관심 있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진행 자체에 의미를 두는 뻘짓이에요.

하지만 바로 이 소시오파틱 프렌드를 통해서,
코카인 오줌물은 스스로 그런 강박을 내려놓았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7번트랙인 바디 유포리아에서 이네들은 또하나의 강박을 내려놓는데,
그건 바로 이 밴드 최초로 150초를 넘는, 3분 19초짜리 트랙을 만들어놓았다는 거죠.


재미있는 건, 이 노래는 3분이 넘어갈 이유가 단 하나도 없는 트랙이란 겁니다.
심지어 이네들은 정말로 2분30초 넘는 노래 만드는 법을 모른다는 듯이,
2분 20초 앞 뒤로 다른 노래 2개를 짜깁기 해놨죠-_-
난 솔직히 이 시도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말했듯 이건 다른 노래 두 개의 짜깁기고, 전혀 성공적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이 태도의 변화, '우리는 지금까지의 강박을 내려놓기로 했어'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클리셰의 적극적 활용과 짧은 플레이타임에 대한 강박 제거를 선언하고도,
밴드의 스타일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세상 누가 이런 노래를 좋아하겠어?'란 평을 받아온,
정말로 모두들 싫어하던 내용물을 타협하지 않았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지금껏 갈곳 모르고 이리저리 날뛰기만 하던 스타일이 깔끔하게 완성됐어요.
명료하고 군더더기 없는 뻔뻔함이 날카로운지 무딘지 구분조차 못할만큼 빠르게 스쳐가는,
즉각적이고 직관적이고 직설적인 독설.
저 명료성과 직관성이 더해지니, 이 빠르게 휩쓸고 지나가버리는 (곰곰이 뜯어보면 엉터리스러운) 스타일이
제대로 의미를 갖추고 인식되기 시작했죠.

네, 이건 내가 보통 극찬하는 실험적 문화예술과는 다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독자를 신경쓰지 않는 오만함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작자 스스로를 신경 쓸 여유조차 없이 '오만이고 지랄이고 알게 뭐야?'하고 있는 거죠.
남들보다 훌쩍 빠르게 달려나가서는 뒤를 돌아보며 '아, 내가 저런 낙오자들까지 챙겨줘야겠어?'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찍히고 밟히고 만신창이가 되어서 한 발 한 발 어렵게 걸어나가다,
이제야 제대로 달려나갈 방법을 찾고는 미친듯이 뛰고 있는 거라고요.
누가 따라올 수 있든, 없든, 그걸 신경 쓸 여유는 전혀 없는 거죠.

이 앨범에 '없는 점수'인 10-1.0점을 주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이 앨범은 9.0점이 굉장히 합당한 앨범이지만,
결코 9플랫이나 8+1.0점 앨범이 될 수 없어요.
이 앨범은 세상 누구에게든 듣기 좋으라고 만든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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