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시간 : 2019/03/01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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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클럽의 worse half였던 레베카 테일러의 솔로 프로젝트를 내가 주목하지 않은 거야 당연한 일이죠.
그 의미 없는 슬로우 클럽의, 더 어설프고 더 가치 없는 반쪽이었다니까요? 이 아가씨는!
20대를 통째로 슬로우 클럽으로 낭비했던 무의미한 음악가의 솔로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주기에는,
이 노는 게 일인 나조차 너무나 바쁘니까요.
하지만 올해 1월에 내놓은 이 트랙은 내게 상당한 어필을 했어요.
이 부족한 자존감을 훤히 드러낸 이름을 쓰는 음악가가 누군지 내가 찾아보고,
레베카 테일러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당연하게 '동명이인이겠지?'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사실 이 노래가 내게 어필한 가장 큰 이유는
저 예명과 맞물린, 무너진 자존감에 짓눌려 터져 나오는 비명 같은 가사였죠.
하지만 이 노래를 제외한 다른 싱글들은 대체 이걸 어디다 써야하는 노래인지 감이 안 잡히는 게 사실이었죠.
이런 노래야 그렇다치더라도...
이 데뷔 싱글은 도대체 의도가 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전체적인 평가야 '거 앨범 나오면 제대로 들여다 봅시다'였지만,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관심 없었어요.
리뷰어 카피를 구해보기는커녕, 오늘 데뷔 앨범이 나온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죠.
그리고 레베카 테일러는 굉장히 독특한 솔로 데뷔 앨범을 만들어왔습니다.
자, 결론부터 뱉어놓자면, 난 이 앨범에 9플랫 평점을 줄테지만
여긴 정말로 정수부 9점에 걸맞는 잘 만들어진 트랙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제멋대로 '개성있게', 네, 개성있게가 아니라 '개성있게' 되는대로 만들어진 13개 트랙이 있죠.
아니요, 이건 특히 피치포크가 주목하는 머저리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술성을 확보하겠답시고 개성을 억지로 주입해서 만든 노래들이 아닙니다.
뭔가 남이 안 간 길을 찾아 갈고 닦고 다양한 방향으로 둘러치고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건 그냥 제멋대로 튀어나오는대로 아무렇게나 받아 적은 노래들입니다.
아무 계획도 뭣도 없이 발길 가는대로 한 발 한 발 걸은 도보여행처럼,
이 앨범은 목표도 없고, 방향도 없고, 심지어는 종종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건축물이나 자연경관 사이를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지나간 적 없는 야생 그대로의 험로를 개척해다니는 게 아니라,
어디 인구 3만쯤 되는 깡촌의 읍내(탁트인 논밭도 아니고 도시의 마이너카피조차 되긴 힘든 읍내요.)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그것도 모자라서 "다리 아파, 쉴래."가 수도 없이 튀어나오고,
"하이고 내 다리는 왜 이 모양일까, 평소에 운동 안 하고 뭐했을까.... 그나저나 맛있는 거 먹고 싶다."
하며 한탄조차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여행기를 읽는 느낌이에요.
뭔가 신묘한 글 솜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스토리텔링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특별한 경험이 없는 거야 당연한 얘기고요.
그런데, 흥미로워요.
이 아무 의미 없는, 새로운 관점도, 남다른 통찰도, 능숙한 전달도, 빼어난 유머도,
갈 곳도 올 곳도 없는 무가치한 이야기가,
뭔가 흥미를 끈다는 겁니다.
"이건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하는 의문 떄문인가 싶지만,
아니요. 그것 때문만이 아니에요.
이 도대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자유연상과,
그 엉터리 같은 생각들을 제약 없이 받아적는 솔직함은
이 정신 없고 하찮고 한심한 이야기에 굉장한 매력을 안겨줍니다.
아니, 도리어 하찮고 한심한 이야기이기에 매력이 있는 거죠.
'스스로를 존중하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결코 이렇게 하찮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풀어놓지 않고,
스스로를 치장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려 노력할테니까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스스로를 존중하는' 행동이 자신의 모든 가치를 깔아뭉개게 만들고 말테죠.
반면 그런 자존심은 존재하지 않는 레베카 테일러는 솔직하게 자기의 하찮기 그지 없는 이야기를
아무런 첨삭 없이 흩어 놓기에 진정한 의미의 자아 존중을 할 수 있고,
이 아이러닉한 예명이 반어를 만들지 못하는 역설을 불러 일으킨다고요.
그리고 그 와중에, 대놓고 뻔뻔하게 "칭찬해주세요!"하고 있는 앨범 제목이 치고들어오는,
어딘가 제대로 어긋난 유머감각이 헛웃음이 나오게 만들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 헛웃음이 정말로 즐거운 경험이라는 거예요.
심지어 앨범에서 가장 번뜩이는 트랙은 14번 트랙(인트로, 인털류드 제외하면 11번째 트랙)인 She Reigns입니다.
누가 봐도 뭐가 번뜩인다는 건지 이해를 못할 법한 이 노래가,
이 앨범 전체에서 가장 빛나는 트랙입니다.
스탠드 얼론으론 대체 뭐에다 쓸 수 있는 노래인지 궁금한 이 노래가,
앨범 안에서는 눈부시게 빛나며 저 확고한 가사 전달과 함께
이 아이러닉한 음악가 이름을 다시 조명해주죠.
이 자기연민과 조롱, 자조와 비꼼으로 가득차 있는 일기장은,
반어와 역설 사이에서 춤추며 레베카 테일러의 자아를 제대로 끌어올리고 있죠.
레베카 테일러가 이걸 의도했을까요?
글쎄요. 이 반어와 역설이 서로 꼬이면서 상승작용을 만들어내는 건,
온전히 레베카 테일러가 반어적으로 지어 붙인 예명: 자아 존중과
이 앨범의 제목: 칭찬해주세요!에서 비롯하고 있으니,
확실히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이 이야기는 양방향으로 꼬여 올라가기에,
의도했다면 의도한 대로, 의도하지 않았다면 의도하지 않은 대로
재미있는 반어와 역설의 상호 보완과 상승작용을 만들죠.
칭찬해달라고요?
그럼요, 칭찬해줄게요!
몇 번이라도 칭찬해줄게요!
이런 앨범을 만들어왔는데 어떻게 칭찬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
흠 잡을 곳을 하나 찾았다.
커버아트에서 속옷은 전부 손으로 가렸어야하고,
휴대폰은 좀 더 길게 잡아 눈에 더 잘 띄게 노출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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